혼잣말이 늘은 탓인지 바다에서 주워온 돌이 너무 예뻤던 탓인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디에서 왔니. 대답이 없었다. 그래, 살아있지도 않은 돌에게 대답을 기대 하다니. 그리고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가로 세로 지름이 약 1.5cm 정도 되었는데, 이렇게 수많은 색이 존재 하다니. 검정, 회색, 연보라 빛에 가까운 흰색, 푸른색, 주황색.작은 몸에 너무도 다양한 무늬가 존재했다. 어디에서 왔니. 어디에서 왔니.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 또한 울고 있었다. 거센 물살 때문에 나의 어미 돌에게서 부터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계곡의 상류 쪽에서는 수많은 이별이 일어나고 있었다. 본래 하나인줄 알았던 몸은 분리되는 순간, 크게 남는 쪽은 어미로 남았고 떨어져 나온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이가 되었다. 한동안은 어미 돌을 바라보며 울다가 물살에 밀려 어미 돌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왔음을 느낀 순간, 고아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한참을 울다 체념하고 하염없이 흘러 내려갔다. 어디에 도착하기 위해 흘러 간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흐르고 있으니 흘러갔다. 꽤나 빠른 속도로 매우 많은 것들을 지나치며 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나를 고아로 만든 물살을 원망 했었는데 아는 이 없는나에게 물살은 곧,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친구가 되었다. 빠르게 밀려 내려 와서는, 잠시 평평한 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곳은 ‘강’이라고 불렸다. 그렇게 강에 있던 중, 내가 온 방향과 같은 쪽에서 어떤 돌이 굴러와 내 옆에 멈추었다. 그 돌과 나는 꽤 오래 붙어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 몸의 일부가 물살에 깎여 가루가 되었고 그 가루는 나에게 붙어 나는 점점 더 다양한 색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서야 처음으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점점 닮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같은 환경에 놓여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가 싶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비가 매우 오던 날 나는 몸이 붕 뜨더니 한없이 굴러갔다. 데굴데굴. 어미 돌에게서 떨어져 나온 순간보다 매우 몸이 작아져 있었다. 통과하지 못할 것 같던 돌들의 틈도 통과하고 있었다. 아래로 흘러갈수록 물살은 약해졌고 부드러웠다. 가끔 비가 오래 내리지 않는 동안에는 물 밖으로 나와 햇빛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나의 몸은 계속 떨어져 나갔지만 나는 그 어느 것보다 견고하게 남았다. 바다라 불리는 곳에 정착 했고, 사람들은 나의 몸을 예쁘다면서 만져댔다.
어디에서 왔니. 나는 이제 돌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를 지명하며, ‘어디’에서 왔구나 할 수 없었다. 거쳐 온 모든 상황이 그 돌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 질문은 원초에 답을 내놓으라고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리고는 또 깨달았다. 그 질문이 나의 인생에 대입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어미 돌에서 떨어져 나온 돌은 곧 고아가 되었는데, 우리의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쯤이면 육체적 고아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고아가 되고는 만다. 사고의 종착지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항상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헤맨다.
또한, 돌이 강에서 오랫동안 어떤 돌과 붙어있었던 것 같이 삶에 있어 아주 오랫동안 의지하고 함께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한다. 비슷한 환경에 놓여 서로 닮아 가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누구든 거울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데, 어떤 이를 만나며 서로의 모습을 닮아가고 상대방을 통해 본인의 모습을 알아간다고 한다. 그런걸 보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이란 많은 부분을 떨쳐내기도 하고 정리해나가며 더욱 단단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 인가보다. 노년기의 내 모습은 수많은 상황과 환경을 거쳐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색과 형체를 지닌, 내가 주워온 돌과 같은 모습이면 좋겠다. 긁어내면 벗겨지는 무늬를 가진것이 아니라, 아무리 험한 상황에 놓여도 깨지거나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