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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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ir Loss
2023, vegetable leathers, waxed thread, artificial hair, dimensions variable 

머리카락은 몸에 박혀있을 때엔 우리에게 친밀한 내부이다. 머리카락을 사수하고자 매우 노력한다. 어떻게든 살에 박혀있도록, 찰랑거리도록 한다. 올리브영에 가면, 머릿결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제품들의 종류를 셀 수 없이 많다. 내가 아는건 샴푸랑 린스밖에 없었는데, 언제부터 컨디셔너, 트리트먼트, 헤어팩, 오일, 에센스 뭐가 그렇게 많이 생겨난건지. 떨어지면 그만인 것을. 바닥에 떨어지면 주워서 또는 돌돌이에 붙여서 쓰레기통에 버리기 바쁜 그것을 왜 그렇게 지키려고 노력하는걸까. 이런걸 보면 언제든 외부가 될 수 있는 것을 내부로 지키려는 사람의 노력은 꽤 정성스럽고 로맨틱 한 것 같다.

아빠의 탈모가 시작되었을 때, 아빠는 우울했다. 매일 매일 하루가 끝날 때 쯤, 방과 욕실 배수구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오늘은 몇 개가 빠졌는지 체크해보는 것이 일과였다.  머리가 덜 빠진 날은 기쁘고 머리가 많이 빠진 날은 슬펐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것이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기분을 변화시키는지. 나의 괜찮을거라는 몇 마디 응원보다 강한 것이라니 아이러니했다. 아빠는 미용실에서, 인터넷에서, 다단계에서 거의 10가지 종류의 샴푸를 샀다. 두세번씩 써보고 남겨진 한두가지 제품 외에 나머지들은 엄마에게, 오빠와 나에게 넘어왔다.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낭비가 될지 모르는 돈을 쓰는 것도  괜찮다. 언제든 외부가 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 애정과 퍼붓는다. 

살에 박힌 털일 뿐이지만 그것이 떨어져 나갈 땐, 살에 붙은 손톱이 잘려 나갈 때보다 더 슬프다. 예비 외부자는 최대한 길게 내부로서 보호받고 애정받는다. 때로는 또다른 외부와의 접점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타인의 내부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그것이 떨어졌을 때에는 당연하게 버려진다. 빈 구멍 안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은 인지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의 애정, 보호본능, 집착, 호기심, 매정함, 무심함이 모두 담겨있는 머리카락은 오늘도 사람들의 외부가 되지만 나는 이제 늘 그것을 내부로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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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ping Therapy
2023, vegetable leathers, waxed thread, clear pvc vinyl, dimensions variable

 부항이 영어로 뭔지 찾아보니, Cupping Therapy였다. Therapy는 알겠는데, Cupping이라는 단어가 뭔가 싶었다. 컵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알겠는데 therapy와 함께 있지 않을 땐 어떤 단어인지 궁금했다. Cupping을 검색해보니, 여러 가지 원두의 맛과 향을 시음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뜻하는 단어라고 했다. 부항을 뜻하는 Cupping Therapy라는 단어,는 동양의 요상한 요법을 표현하기 위해 조합된 조금은 웃긴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알고 있던 부항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것에 대한 고통스러움이나 원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부항 자국을 보면 포도같다고 생각했던 것 말고는. 

부항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더러운 피를 그냥 밖으로 빼내는 것이다. 압력을 가해 빼내는 것. 압출. 이 복잡한 세상에서, 부항은 참 간단하고 명쾌한 치료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병을 치료하거나 통증을 낫게 하려고 약을 먹으며, 이 약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모르면서 안심할 때가 많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보거나 내가 작업할 때 이렇게 느낄 때가 많다. 미술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무식하고, 작업을 이해하기엔 너무 단순하게 머리가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내 작업에는 많은 얘기를 담고 싶고 멋지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집어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마음을 포기하고, 부항같이 단순하고 명쾌한 작업을 하고 싶기도 했다. ‘내부공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부에 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동시에 무심함을 갖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아주 긴 관 속에 투명 호스. 그 안엔 피 알갱이들. 너무 단순하고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접근 방식인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내부는 마음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 혹은 타인의 마음에 접근할 때 조금 어리석다. 걱정이나 의심이 생기면 떨쳐버리지 못하고, 타고 타고 타고 타고 타고 타고 타고 위로 올라가 보는 식의 연속된 걱정을 펼친다. 그렇게 표현된 내부의 연결이 현재의 나와 가장 비슷한 표현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와서, 그 관 안에 있는 호스는 끊겨있거나 연결되어 있다. 투명한 호스를 통해 피 알갱이들을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내부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온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내부에 대해 의심하거나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투명한 호스를 가만 보면 뚝뚝 끊겨있다. 의심과 불안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관을 타고 나온 피들은 작고 귀여운 알갱이들로 살 위에 뾱뾱 올라온다. 피를 표현하기 위해 동그라미들을 자르고 보니 너무 귀여웠다. 파티의 스팽글같이 보이기도 한다.

기존 그림 작업에는, 피 흘리는 채소나 터진 감 같은 이미지들이 있다. 이런 이미지들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하다보면, 도착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현재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터진 신체의 이미지를 극복해 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해내야만 삶에서 내게 주어진 것들을 문제없이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몸이 터진 이미지를, 유사한 이미지로 바꾸어 그려내는 일을 통해 극복 중이다. 사실, 노력을 안 해도 그런 것들이 눈에 자꾸 들어왔다. 길에 떨어져 터진 감을 보면 슬퍼지고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하지만 그 장면을 작업으로 바꿨을 땐, 작은 생명체가 소멸하기 전 몸을 최대한으로 부풀려 눈에 띄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아름다운 발악같이 보이기도 하고 폭죽처럼 아름다운 장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피를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순간들을 찾아내고 그 형태와 특성의 다름을 알아가며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